이상기체 상태방정식 \(PV=NkT\)는 기체의 압력, 부피, 온도라는 거시적인 양들 사이의 관계를 알려준다. 압력, 부피, 온도는 기체의 거시적 상태를 나타내는 물리량으로 미시적인 분자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평균적으로 대표하는 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강의에서는 거시적인 물리량 \(P, V, T\)와 미시적인 물리량인 분자의 운동 에너지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고, 단원자 이상기체 하나의 평균 운동 에너지가 왜 \(\dfrac{3}{2}kT\)인지 살펴본다.
우리는 보일, 샤를, 게이뤼샥의 법칙으로부터 이상기체의 상태방정식이 다음과 같이 주어짐을 알고 있다.
이상기체 상태방정식
이때 압력 \(P\), 부피 \(V\), 온도 \(T\)는 모두 기체 덩어리 전체를 대표하는 거시적인 물리량이다. 이 식은 기체 덩어리를 이루는 \(10^{23}\)개가 넘는 분자들이 각자 얼마나 빠르게, 어느 방향으로 날아다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말해주지 않는다. 이에 우리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기체의 거시적 상태 \(P,\ V,\ T\)와 그 기체를 이루는 분자 하나의 운동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분자운동론의 관점에서는 분자와 용기 벽의 충돌이라는 역학적 상황을 통해 압력과 분자의 운동 에너지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고, 자유도의 관점에서는 분자의 운동을 독립적인 운동 자유도로 나누어 각 자유도에 에너지가 어떻게 분배되는지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통계역학적 관점에서는 미시적 확률분포를 바탕으로 물리량의 평균값을 계산하여 거시적인 열역학적 성질을 설명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관점에서 출발하지만, 이들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결국 동일한 물리적 결론에 도달한다.
기체를 한없이 확대해서 들여다보면, [FIG. 1.]과 같이 수많은 분자가 끊임없이 무작위한 방향으로 움직이며 용기의 벽과 쉬지 않고 부딪히고 있다. 분자 하나가 벽에 부딪히는 순간 그 분자의 운동량은 바뀌고, 뉴턴의 운동 제3법칙에 의해 분자가 벽에 준 충격만큼 벽도 분자도 벽으로부터 힘을 받는다. 이런 충돌이 셀 수 없이 많은 분자에서 초당 수십억 번씩 일어나고, 그 무수한 충격들이 시간에 대해 매끄럽게 평균을 이루면 우리 손에는 일정하고 매끈한 압력으로 느껴진다. 즉, 압력이란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인과의 사슬로 이해할 수 있다.
분자의 운동 → 벽과의 충돌 → 운동량 변화 → 힘 → 압력
[FIG. 1.]과 같은 한 변의 길이가 \(L\)인 정육면체에 질량이 \(m\)인 분자가 \(N\)개 있다고 생각해보자. 분자 하나([FIG. 1.]의 초록색 분자)의 속도를 \(\vec v=(v_x,v_y,v_z)\)라 하면, 오른쪽 벽과 충돌할 때 이 분자는 \(-x\)방향으로 힘을 받는다. 충돌 직전 분자의 운동량은 \(p_x=mv_x\)이고(벽과의 충돌은 운동 에너지가 보존되는 탄성충돌이라고 가정한다. 또한 용기의 벽은 매우 무거워 사실상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벽으로 취급한다), 충돌 직후 분자의 운동량은 \(p_x'=-mv_x\)이다. 충돌 과정 중 총 운동량이 보존되므로 벽은 분자가 잃은 운동량만큼의 운동량을 얻는다. 따라서 한 번의 충돌로 인한 벽의 운동량 변화량은 다음과 같다.
벽의 운동량 변화량
분자가 오른쪽 벽에서 튕겨 나와 왼쪽 벽까지 갔다가 다시 오른쪽 벽으로 돌아오려면 왕복 거리 \(2L\)을 이동해야 한다(\(y,z\)방향 운동은 이 왕복과 무관하며, 다른 벽과의 충돌은 지금 논의와 독립적으로 일어난다). 따라서 \(x\)방향 속도가 \(v_x\)인 분자가 같은 벽에 다시 충돌하기까지 걸리는 시간 간격은 \(\Delta t = \dfrac{2L}{v_x}\)이다. 한 번의 충돌마다 \(2mv_x\)의 운동량이 벽에 전달되므로, 분자 하나가 오른쪽 벽에 가하는 평균 힘은 다음과 같다.
분자 하나가 벽에 가하는 평균 힘
실제 기체에는 이런 분자가 \(N\)개나 있다. 식 (1)로부터 구한 \(f\)는 분자 하나가 벽에 가하는 평균 힘이었다. 이제 \(N\)개 분자 각각의 기여 \(f_i = \dfrac{mv_{x,i}^2}{L}\)를 모두 더해, 벽 전체가 받는 총 힘 \(F\)를 구해보자. 평균값의 정의(\(\langle X\rangle\)는 "\(X\)의 평균값"을 뜻하는 표기법이다) \(\displaystyle\sum_{i=1}^{N} v_{x,i}^2 = N\langle v_x^2\rangle\)를 이용하면 다음과 같다.
분자 \(N\)개가 벽에 가하는 힘
압력은 \(P=\dfrac{F}{A}\)이고 벽의 넓이와 부피는 각각 \(A=L^2\), \(V=L^3\)이므로 압력은 다음과 같다.
압력과 \(\langle v_x^2\rangle\)의 관계
먼저 표기법 하나를 짚고 넘어가자. \(v_{x,i}\)는 "\(i\)번째 분자의 \(x\)방향 속도"를 뜻한다. 쉼표 앞의 \(x\)는 어느 성분인지(운동을 \(x,y,z\) 세 방향으로 나눈 것 중 하나)를, 쉼표 뒤의 \(i\)는 \(N\)개 중 몇 번째 분자인지를 나타내는 서로 다른 종류의 첨자다. 쉼표 없이 \(v_{xi}\)라고 쓰면 마치 "\(xi\)"라는 하나의 첨자처럼 보여 혼동을 줄 수 있으므로, 이 강의에서는 쉼표로 구분하여 \(v_{x,i}\)로 적는다.
이제 평균값의 정의부터 다시 살펴보자. \(N\)개의 분자가 있고 \(i\)번째 분자의 \(x\)방향 속도 제곱이 \(v_{x,i}^2\)이라면, 이 값들의 평균 \(\langle v_x^2\rangle\)[뜻: \(x\)방향 속도 제곱의 평균값] 은 정의상 "모두 더한 뒤 개수로 나눈 값"이다. $$\langle v_x^2\rangle \equiv \frac{1}{N}\sum_{i=1}^{N} v_{x,i}^2$$ 양변에 \(N\)을 곱하면 곧바로 \(\displaystyle\sum_{i=1}^{N} v_{x,i}^2 = N\langle v_x^2\rangle\)을 얻는다 — 새로운 물리 법칙이 아니라 평균의 정의를 그대로 뒤집어 쓴 것뿐이다. 이 식이 중요한 이유는, 개별 분자 하나하나의 \(v_{x,i}^2\) 값을 낱낱이 알 필요 없이 "평균 하나"만 알아도 \(N\)개 분자 전체의 합을 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실제 기체에서는 \(10^{23}\)개가 넘는 분자가 저마다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어 개별 값을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평균 \(\langle v_x^2\rangle\)라는 하나의 통계적 대푯값만 알면 벽 전체가 받는 힘 \(F\)를 계산할 수 있다.
즉 이 식은 미시적 무질서(수많은 분자의 제각각인 운동) 속에서 거시적 규칙성(일정한 압력)이 등장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 낱낱의 분자 운동은 몰라도, 그 평균만 알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오직 \(x\)방향 속도 성분만 다루었다. 그런데 분자의 속력은 \(v^2=v_x^2+v_y^2+v_z^2\)이다. 기체가 열평형 상태에 있다면 어느 한 방향도 다른 방향보다 특별히 선호되지 않는다 — 이것이 바로 등방성(isotropy)이다. 따라서
이를 식 (2)에 대입하면 세 방향이 골고루 기여하는 압력과 분자의 속도 제곱의 평균 사이의 관계를 얻는다.
등방성(isotropy)이란 "어느 방향으로 보아도 성질이 같다"는 뜻이다. 기체가 열평형 상태에 있다면, 분자들은 \(x\)방향으로도, \(y\)방향으로도, \(z\)방향으로도 특별히 더 빠르거나 느리게 움직일 이유가 없다 — 용기가 세 방향에 대해 대칭이고, 어느 벽도 다른 벽보다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통계적으로 세 방향은 완전히 동등하다.
이를 수식으로 옮기면, \(x,y,z\) 각 방향의 속도 제곱의 평균이 모두 같다는 뜻이 된다. $$\langle v_x^2\rangle=\langle v_y^2\rangle=\langle v_z^2\rangle$$ 한편 분자 하나의 속력 \(v\)는 피타고라스 정리에 의해 \(v^2=v_x^2+v_y^2+v_z^2\)이므로, 양변에 평균을 취하면 $$\langle v^2\rangle=\langle v_x^2\rangle+\langle v_y^2\rangle+\langle v_z^2\rangle$$ 을 얻는다. 여기에 세 평균이 모두 같다는 등방성 조건을 대입하면 우변은 \(\langle v_x^2\rangle\)이 세 번 더해진 것과 같아진다. $$\langle v^2\rangle = 3\langle v_x^2\rangle \ \ \Longrightarrow\ \ \langle v_x^2\rangle=\frac13\langle v^2\rangle$$
즉 \(\dfrac13\)이라는 계수는 특별한 물리 법칙이 아니라, "세 방향이 동등하다"는 대칭성으로부터 \(v^2\)을 세 등분한 결과일 뿐이다. 우리가 처음 분자운동론을 유도할 때는 오직 \(x\)방향만 다루었지만, 등방성 덕분에 \(y,z\)방향의 기여까지 자연스럽게 포함시킬 수 있게 된다.
분자 하나의 운동 에너지는 \(\frac{1}{2} mv^2=K\)이므로 \(m\langle v^2\rangle = 2\langle K\rangle\)이다. 이를 식 (3)에 대입하면 압력이 평균 운동 에너지로 직접 표현된다.
여기까지는 순전히 뉴턴 역학만으로 얻은 결과이다. 온도라는 개념은 아직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상기체 상태방정식 \(PV=NkT\)를 가져와, 방금 얻은 \(PV=\frac23 N\langle K\rangle\)과 좌변을 나란히 놓아 보자. 두 식 모두 좌변이 \(PV\)로 같으므로 우변끼리 같아야 하고, \(N\)을 소거하면 다음을 얻는다.
$$\langle K\rangle = \frac32 kT$$
서로 독립적으로 발전해 온 역학 이론과 실험으로 확립된 이상기체 법칙이 만나, 온도라는 개념이 사실은 분자 하나의 평균 병진 운동 에너지를 재는 척도임을 알려준다. 하지만 아직 중요한 의문이 하나 남아 있다.
그런데 왜 하필 \(\dfrac32\)일까? \(\dfrac12\)도 아니고 \(2\)도 아니고, 왜 정확히 \(\dfrac32\)라는 숫자가 나올까?
단원자 분자 하나의 속도를 \(\vec v=(v_x,v_y,v_z)\)라 하면 \(v^2=v_x^2+v_y^2+v_z^2\)이므로, 운동 에너지도 자연스럽게 세 부분의 합으로 쪼갤 수 있다. [FIG. 2.]와 같이 서로 직교하는 세 방향의 속도 성분이 전체 운동 에너지 \(K\)를 \(K_x,K_y,K_z\) 세 조각으로 나눈다.
운동 에너지의 분해
STEP 01에서 이미 사용했던 등방성을 다시 쓰면, 열평형 상태의 기체에는 어느 방향도 특별히 선호되지 않으므로 세 방향의 평균 에너지도 똑같아야 한다.
그런데 STEP 01에서 \(\langle K\rangle=\frac32 kT\)임을 이미 얻었으므로, 이 값을 그대로 대입하면 된다.
한 방향(자유도)당 평균 에너지
여기서 \(x,y,z\) 방향의 운동 에너지 \(\frac12mv_x^2,\frac12mv_y^2,\frac12mv_z^2\)처럼, 에너지에 속도(또는 위치)의 제곱(이차형) 형태로 독립적으로 기여하는 항 하나를 자유도(degree of freedom)라고 부른다(보다 엄밀하게 자유도란 계의 상태를 독립적으로 기술하기 위해 필요한 독립적인 운동 또는 좌표의 하나를 말한다). 단원자 분자는 공간 어느 방향으로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으므로 3개의 병진(translational) 자유도를 가진다. 이제 \(\dfrac32\)라는 숫자의 정체가 완전히 드러난다.
\(\dfrac32\)의 분해
\(3\)은 단원자 분자가 가진 병진 자유도의 개수이고, \(\dfrac12\)는 각 자유도가 평균적으로 나눠 받는 에너지의 몫이다. 즉 \(\dfrac32\)는 신비로운 숫자가 아니라, "자유도 3개 × 자유도 하나당 \(\dfrac12kT\)"라는 지극히 단순한 곱셈일 뿐이다.
온도 \(T\)의 열평형 상태에서, 에너지가 속도(또는 위치)의 제곱에 비례하는 형태(이차형, quadratic form)로 주어지는 독립적인 자유도 하나마다 평균적으로 \(\dfrac12kT\)의 에너지가 배분된다. 지금 다룬 병진운동 \(\frac12mv_x^2\)은 그 가장 간단한 예일 뿐이며, 이 원리는 회전운동의 \(\frac12I\omega^2\)이나 용수철의 위치 에너지 \(\frac12kx^2\)처럼 "제곱" 형태로 쓰이는 모든 에너지 항에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가 다룬 것은 헬륨(He)이나 아르곤(Ar)처럼 원자 하나로 이루어진 단원자 분자다. 그런데 우리가 숨 쉬는 공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산소(\(\text{O}_2\))나 질소(\(\text{N}_2\))는 원자 두 개가 아령처럼 결합된 이원자 분자다. 이런 분자는 병진운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게중심을 지나는 두 축을 중심으로 회전도 할 수 있다(분자의 결합축을 중심으로 한 회전은 관성모멘트가 거의 \(0\)이라 무시된다). 따라서 이원자 분자는 병진 자유도 \(3\)개에 회전 자유도 \(2\)개를 더해 모두 \(5\)개의 자유도를 가진다.
에너지 등분배 정리를 그대로 적용하면 이원자 이상기체의 평균 에너지는 \(\langle E\rangle = 5\times\frac12kT = \frac52kT\)가 된다. 실제로 상온의 산소·질소 기체는 (아래에서 볼 진동 자유도가 거의 얼어붙어 있는 덕분에) 이 예측과 매우 가까운 \(C_V\approx\frac52R\)의 정적 몰비열을 보여, 단원자 기체의 \(C_V=\frac32R\)보다 그만큼 더 크다는 것이 실험적으로 잘 확인된다.
그런데 이원자 분자는 원자 사이의 결합이 마치 용수철처럼 늘었다 줄었다 진동할 수도 있다. 용수철 운동 에너지 \(\frac12m\dot x^2\)과 위치 에너지 \(\frac12kx^2\)을 더하면 자유도가 \(2\)개(운동+위치) 더해져야 할 것 같은데, 상온에서는 놀랍게도 이 진동 자유도가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고전역학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양자역학적 설명이 필요하다(진동 에너지가 양자화되어 있어 상온의 열 에너지 \(kT\)로는 그 첫 번째 들뜬상태조차 거의 건드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 이는 20세기 초 고전 통계역학의 한계를 드러내며 양자역학의 필요성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STEP 02는 \(\langle K\rangle=\frac32kT\)라는 결과를 "세 자유도가 똑같이 나누어 가진다"는 대칭성 논리로 재해석했을 뿐, 애초에 왜 한 자유도가 정확히 \(\frac12kT\)만큼을 받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이 숫자가 어디서 나오는지, 가장 근본적인 층위인 통계역학에서 직접 계산해 보자.
통계역학은 계의 거시적 상태를 이루는 수많은 미시상태를 확률적으로 다루며, 열평형 상태에서는 각 미시상태의 확률이 그 에너지에 따라 정해진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구체적으로, 열평형 상태에서 에너지 \(E\)를 가진 미시상태가 나타날 확률은 다음의 볼츠만 분포를 따른다.
볼츠만 분포
에너지가 높은 상태일수록 지수함수적으로 드물게 나타난다. 온도 \(T\)는 바로 이 "얼마나 빨리 희귀해지는가"를 결정하는 척도다 — \(T\)가 높을수록 분포가 완만해져 높은 에너지 상태도 비교적 흔해지고, \(T\)가 낮을수록 분포가 뾰족해져 거의 모든 분자가 낮은 에너지 근처에 몰린다.
방이 아주 많은 커다란 쇼핑몰을 상상해 보자. 각 방마다 입장료(=에너지 \(E\))가 다르게 붙어 있다 — 로비는 누구나 공짜로 들어가지만, 화려한 라운지일수록 입장료가 비싸진다. 이 나라의 수많은 시민들이 저마다 가진 돈으로 이 방 저 방을 무작위로 드나든다고 하자.
이때 어느 순간 사진을 찍어 보면, 입장료가 비싼 방일수록 그 안에 있는 사람 수는 적을 것이다 — 그만큼 그 돈을 낼 수 있는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이때 "온도"는 이 나라 시민들의 평균 소득 수준에 해당한다. 소득 수준이 높은 나라(온도가 높음)라면 비싼 라운지에도 제법 많은 사람이 있겠지만, 소득 수준이 낮은 나라(온도가 낮음)라면 거의 모든 사람이 공짜인 로비에만 몰려 있을 것이다.
볼츠만 분포는 바로 이 직관을 수식 하나로 담아낸다. $$P(E)\propto e^{-\frac{E}{kT}}$$ 여기서 \(E\)는 그 "방"(상태)에 들어가는 데 필요한 입장료, \(T\)는 앞서 말한 시민들의 평균 소득 수준(온도)이다. 입장료 \(E\)가 클수록(더 비싼 방일수록) 지수 \(-E/kT\)가 크게 음수가 되어 그 방에 있을 확률이 급격히 작아지고, 소득 수준 \(T\)가 높을수록 같은 입장료 \(E\)라도 그 감소폭이 완만해져 비싼 방에 있을 확률이 상대적으로 커진다.
왜 하필 지수함수일까? 직관적으로, 입장료가 일정한 만큼씩 오를 때마다 그 돈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의 비율은 매번 같은 비율로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된다 — 마치 가격이 한 단계씩 뛸 때마다 그걸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늘 똑같은 비율로 줄어드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한 단계 오를 때마다 일정한 비율로 줄어드는" 변화가 바로 지수함수의 정의이며, 그래서 입장료가 비싼 방일수록 그 안에 있을 확률이 지수적으로 희귀해진다.
이제 이 원리를 분자 하나의 \(x\)방향 운동에만 적용해 보자. \(x\)방향 운동 에너지는 \(K_x=\frac12mv_x^2\)이므로, 볼츠만 분포에 따라 속도 \(v_x\)를 가질 확률은
\(v_x\)의 확률분포 (맥스웰 속도분포의 한 성분)
즉 \(v_x\)는 \(0\)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인 가우시안(정규분포) 형태를 갖는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v_x\)는 연속적인 값을 가지므로 정확히 한 값(가령 \(v_x=0\))을 가질 확률은 엄밀히는 \(0\)이지만, 확률밀도 \(P(v_x)\)는 \(v_x=0\)에서 가장 크다 — 즉 \(0\) 근처의 좁은 속도 구간에 속할 확률이 다른 구간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뜻이다. 반대로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구간의 확률밀도는 완전히 \(0\)은 아니지만, 지수함수적으로 급격히 줄어든다. [FIG. 3.]은 이 분포가 온도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준다 — 온도가 낮을수록 곡선이 \(0\) 근처로 뾰족하게 좁아져 대부분의 분자가 느리게 움직이고, 온도가 높을수록 곡선이 넓고 완만해져 빠른 분자의 비율이 늘어난다.
평균값의 정의에 따라, \(\langle v_x^2\rangle\)은 다음의 적분비로 계산된다.
이 식은 "평균값 \(\langle X\rangle=\dfrac{\text{합}}{\text{개수}}\)"의 정의를 이산합에서 연속적분으로 그대로 확장한 것이다.
1. 이산적인 경우 (1.4절에서 이미 나온 것)
분자가 \(N\)개 있고 각 분자의 값이 \(v_{x,i}\)일 때, 평균은
$$\langle v_x^2\rangle = \frac{1}{N}\sum_{i=1}^{N}v_{x,i}^2
= \frac{\displaystyle\sum_i v_{x,i}^2}{\displaystyle\sum_i 1}$$
— "각 값을 다 더한 것"을 "전체 개수(=각 항에 \(1\)을 곱해 다 더한 것)"로 나눈 것이 평균이다.
2. 연속적인 경우 (3.3절)
\(v_x\)는 이산적으로 셀 수 있는 값이 아니라 연속값이므로, "분자 하나하나를 더한다"는
이산합은 확률밀도로 가중치를 준 적분으로 바뀐다. 즉
3. 왜 굳이 분모로 나눠야 할까?
3.2절 식은 \(P(v_x)\propto e^{-\frac{mv_x^2}{2kT}}\)라고 비례 기호(\(\propto\))로만
썼지, 등호로 쓰지 않았다. 즉 진짜 확률밀도가 되려면 앞에 어떤 정규화 상수 \(C\)를 곱해야
\(\displaystyle\int_{-\infty}^{\infty}C\,e^{-\frac{mv_x^2}{2kT}}dv_x=1\)이 되는데, 이 \(C\)를
굳이 따로 구하지 않아도
$$\langle v_x^2\rangle=\frac{\displaystyle\int v_x^2\cdot Ce^{-\frac{mv_x^2}{2kT}}\,dv_x}
{\displaystyle\int Ce^{-\frac{mv_x^2}{2kT}}\,dv_x}$$
처럼 분자와 분모에 똑같이 곱해진 \(C\)가 약분되어 사라진다. 그래서 본문처럼 정규화 상수를
무시한 \(e^{-\frac{mv_x^2}{2kT}}\) 그대로 분자·분모에 넣고 비율을 취하기만 하면, 자동으로
올바르게 정규화된 평균값이 나온다 — 이것이 "적분비"로 계산하는 이유다.
적분 변수의 이름은 계산 결과에 아무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표기를 간단히 하기 위해 \(v_x\) 대신 \(u\)라는 이름을 쓰자(즉 \(u\equiv v_x\)). 그리고 \(a=\dfrac{m}{2kT}\)로 놓으면 위 적분은 \(I_0=\displaystyle\int_{-\infty}^{\infty}e^{-au^2}du\)와 \(I_2=\displaystyle\int_{-\infty}^{\infty}u^2e^{-au^2}du\)의 비 \(I_2/I_0\)로 쓸 수 있다. \(I_0\)는 그 자체로는 초등함수의 부정적분을 가지지 않지만, \(I_0^2\)을 2차원 적분으로 바꾸는 고전적인 트릭을 쓰면 계산할 수 있다.
\(I_0^2=\displaystyle\int_{-\infty}^{\infty}\!\!\int_{-\infty}^{\infty} e^{-a(x^2+y^2)}\,dx\,dy =\int_0^{2\pi}\!\!\int_0^{\infty}e^{-ar^2}\,r\,dr\,d\theta\)
직교좌표를 극좌표로 바꾸면 \(r\)에 대한 적분이 단순한 지수함수 적분이 되어 손으로 바로 계산된다.
$$I_0^2=2\pi\left[-\frac{1}{2a}e^{-ar^2}\right]_0^{\infty}=\frac{\pi}{a} \ \ \Longrightarrow\ \ I_0=\sqrt{\frac{\pi}{a}}$$
이제 \(I_2\)를 직접 계산하는 대신, \(I_0\)를 매개변수 \(a\)에 대해 미분하는 요령을 쓴다. \(\dfrac{d}{da}e^{-au^2}=-u^2e^{-au^2}\)이므로,
$$I_2=-\frac{dI_0}{da}=-\frac{d}{da}\sqrt{\frac{\pi}{a}} =\frac{1}{2a}\sqrt{\frac{\pi}{a}}$$
따라서 두 적분의 비는 두 적분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sqrt{\pi/a}\)가 약분되어 사라지고, 남는 것은 지극히 단순한 \(1/(2a)\)뿐이다.
$$\langle v_x^2\rangle=\frac{I_2}{I_0}=\frac{1}{2a}$$
\(a=\dfrac{m}{2kT}\)를 다시 대입하면 다음의 깔끔한 결과를 얻는다.
가우스 적분의 결과
이제 식 (4)의 값을 \(x\)방향의 평균 운동 에너지에 그대로 대입하기만 하면 된다.
STEP 03의 결과
STEP 02에서는 대칭성만으로 \(\langle K_x\rangle=\frac12kT\)라고 주장했다면, 이번에는 볼츠만 분포라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에서 이 값을 직접 계산으로 얻어냈다. 두 방식이 정확히 같은 숫자에서 만난다는 사실 자체가, 등분배 정리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통계역학의 필연적인 결과임을 보여준다. \(y,z\)방향도 완전히 동일한 계산으로 \(\frac12kT\)를 얻으므로, \(\langle K\rangle=\langle K_x\rangle+\langle K_y\rangle+\langle K_z\rangle=\frac32kT\)가 다시 한번 확인된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분자 하나하나의 속도 \(v_x\)는 순간순간 완전히 무작위다 — 어떤 순간에는 거의 멈춰 있다가, 다음 순간에는 평균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일 수도 있다. 개별 분자의 운동 에너지는 결코 정확히 \(\frac12kT\)가 아니다. 그런데도 온도계가 가리키는 온도 \(T\)는 왜 그렇게 안정적이고 정확한 값으로 측정될까?
학생 한 명의 키는 예측할 수 없지만, 전교생 \(1000\)명의 평균 키는 매우 안정적인 값으로 수렴한다. 기체 속 분자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은 \(N\sim10^{23}\)개(아보가드로 수 정도)에 달하므로, 평균으로부터의 상대적 요동은 대략 \(1/\sqrt{N}\sim10^{-11}\) 수준으로 극도로 작아진다. 수많은 분자의 완전히 무작위한 개별 운동이 통계적으로 평균을 이루면서, 마치 시계처럼 정확하고 결정론적인 거시 물리량 \(T\)가 나타나는 것이다.
즉, 온도라는 거시적 개념이 그토록 안정적이고 재현 가능한 물리량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 뒤에 숨어 있는 미시적 무작위성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분자가 만들어 내는 평균 효과 속에서 개별적인 무작위 요동이 상대적으로 극도로 작아지기 때문이다(거시적 물리량도 미세하게는 요동하지만, 그 상대적 크기가 \(\frac{1}{\sqrt{N}}\) 수준으로 무시할 만큼 작다).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 "기체 거시적 상태를 나타내는 변수 \(P,V,T\)와 분자 하나의 운동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서론에서 예고했듯, 우리는 분자운동론, 자유도, 통계역학이라는 서로 다른 세 관점에서 출발해 이 질문에 답했다. 그리고 그 답은 모두 \(\langle K\rangle=\frac32kT\)라는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했다.
STEP 01 · 분자운동론 (뉴턴 역학)
분자와 벽의 충돌로부터 압력을 유도하고, 이상기체 방정식과 결합한다.
STEP 02 · 자유도의 관점 (대칭성)
등방성에 의해 세 방향이 에너지를 똑같이 나누어 가진다.
STEP 03 · 통계역학 (볼츠만 분포)
확률분포로부터 기체 분자 하나의 평균 에너지를 직접 적분하여 계산한다.
[FIG. 4.]는 이 세 갈래의 논증이 어떻게 하나로 모이는지 한눈에 보여준다. 왼쪽의 고전역학적 관점은 STEP 01에서 얻은 \(PV=\frac23N\langle K\rangle\)와 독립적으로 실험을 통해 확립된 이상기체 상태방정식 \(PV=NkT\)를 나란히 놓아 \(\langle K\rangle=\frac32kT\)에 도달한다. 오른쪽의 통계역학적 관점은 다시 두 갈래로 나뉘는데, STEP 02는 세 병진 자유도가 대칭성에 의해 에너지를 똑같이 나누어 가진다는 등분배 정리로, STEP 03은 볼츠만 분포 \(P(v)\propto e^{-E/kT}\)를 직접 적분하는 계산으로 각각 같은 결론에 이른다. 서로 다른 관점에서 출발한 이 세 갈래가 모두 같은 결과 \(\langle K\rangle=\frac32kT\)로 수렴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이 결과가 우연이 아니라 필연임을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다. 그림 아래의 문구가 말해주듯, 볼츠만 상수 \(k\)는 다름 아닌 미시세계(분자 하나의 운동 에너지)와 거시세계(온도)를 잇는 연결고리인 셈이다.
Result · 세 관점, 하나의 결론
뉴턴 역학에서 출발한 압력의 계산, 대칭성에서 출발한 자유도의 논리, 확률분포에서 출발한 통계역학의 적분 — 이 셋은 서로를 전제하지 않고도 독립적으로 같은 결론 \(\langle K\rangle=\frac32kT\)에 도달한다. 한 현상에 내재된 물리적 사실이 세 가지 서로 다른 언어로 표현된 것일 뿐이다.
이 강의에서 정말로 기억해야 할 것은 \(\langle K\rangle=\frac32kT\)라는 공식 하나가 아니다. 핵심은 "거시적인 기체의 상태는 수많은 분자의 미시적인 운동을 통계적으로 나타낸 것이다"라는 사실, 그리고 그 연결 고리가 자유도 하나당 \(\frac12kT\)라는 지극히 단순한 규칙으로 요약된다는 사실이다. 이 규칙은 단원자 기체의 병진운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 회전운동, 진동운동, 심지어 고체 속 원자의 떨림에 이르기까지, "제곱" 형태로 쓰이는 모든 에너지에 똑같이 적용되는 훨씬 더 보편적인 규칙이다.